Silicon Valley Story

벤처투자에서는 상환조항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미국에서는 “Redemption Right”이라고, 일정기간 (일반적으로 투자후 5년) 경과후에 투자금에 대해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투자계약에 삽입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법상 (보통 델라웨어주법)으로 투자금 상환시 회사 운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경우 상환을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하간 예전에는 상환조건이 들어간 계약도 자주 눈에 보였지만, 최근에는 상환조건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상환권이 있어도, 상환권은 특정 투자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클래스의 전체 우선주주주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상환권이 실제로 행사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의 경우는 상환조건이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으로 알고있다. 그리고 상환을 요청하는 다양한 경우들이 들어간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x년후에 IPO를 가지 못하면 상환” 이런 조항들이 들어간다. 이해는 된다. 창업자가 “3년후에는 꼭 IPO가마”라고 하면서 투자를 요청했으니, 최소 4년내에 가지 못하면 약속을 안 지켰으니 돈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투자를 했지만, 여전히 투자자는 회사와 “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멘탈리티이다. 투자라고 보기에는 대출 계약과 유사하다. 미국에도 Venture Debt이 있는데, 대출계약이고 (일반적으로 Warrants도 받고) 여러가지 회사 운영에 대한 조항들이 들어가고, 위반시 대출금을 회수하기도 한다.

한국의 창투업계에서는 상환조건을 강하게 설정하고, 상환을 끝까지 집요하게 요청해서 받아내는 것이 일종의 능력으로 인정되는 분위기도 있어 보인다. 물론 개인적으로 펀드출자자의 돈을 내 돈 같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펀드출자자의 이해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노력은 너무 중요한 자세라고 믿는다. 그리고 투자시에 이런 자세를 견지하지 않은 투자자 역시 문제가 있는 투자자이다. 하지만, 벤처펀드는 좋은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이때문에 기본적으로 “high risk high return”의 함수를 가지는 자산클래스이다. 만약 원금 보장을 원하는 펀드출자자라면 차라리 채권형펀드에 출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한국의 독특한 출자환경으로 인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다시 생각을 나누기로 하겠다)

여하간, 이전 보호예수기간 관련 단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상환권 역시 ‘너는 너, 나는 나’의 관계를 투자자와 창업자 사이에 만들어준다. 하지만, 보호예수는 법규정상으로 정의된 것이기 때문에 투자시 이슈는 없는데 반해, 상환권은 투자시에 중요한 협상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창업자는 일단 펀딩을 받을 수 있으면 큰 소리를 쳐 놓고, 기업가치를 높게 받고, 대신 투자가격조정이나 상환권을 제시하고, 투자자는 창업자의 사업계획과는 무관하게 나름 ‘원금보장’이 되는 상환권을 챙길수 있으면 일단 원금손실리스크는 방지하게 된다. 늘 배에서 혼자 도망쳐 나갈 수 있는 구명조끼를 잘 모시고 있으면서, 선장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다. 물론 배가 목적지에 잘 도착하면, 웃으면서 담번에 또 보자고 할 것이고, 만약 중간에 좌초하게 되면 배에서 뛰어내리고 선장만 죽는다. 가끔 구명조끼를 챙겨 입을새도 없이 배가 갑자기 침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경우 투자자도 같이 죽기도 한다. 그래서 선장과 목적지, 배의 항로, 선원들의 상태, 바람, 주변지형 등을 상의하기 보다는, 투자자는 배에 어디 이상이 없나 확인하는 것이 주요 임무가 된다. 여차하면 빨리 구명조끼를 찾아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 벤처업계도 상환권이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보면 어떨까 한다. 대신에 창업자는 도덕적이며 책임있는 경영을, 투자자는 정말 한배를 같이 탔다는 파트너십이 요청되겠다.